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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민국의 역사 고려의 왕의 계보 한눈에 알아보기

Sniply 2025. 10. 17. 16:00

안녕하세요 오늘은 대한민국의 과거의 역사

고려 왕의 계보에 대해서 한눈에 깔끔하게 정리해드릴게요

👑 고려 왕 계보 한눈에 보기 — 474년의 왕조, 그 빛과 그림자

918년, 송악(개성)에서 한 인물이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.
그의 이름은 왕건(王建). 그리고 그가 세운 나라는 고려(高麗)였습니다.

고려는 약 474년 동안 이어진 중세 왕조로, 북진정책과 불교국가의 성격, 그리고 중앙집권제 확립과 외세 간섭의 굴곡을 겪으며 한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냈습니다.
이번 글에서는 고려의 34대 왕 계보를 시대별 흐름에 따라 정리해보겠습니다.

 

🏰 ① 건국과 기틀 확립기

고려의 창건자이자 초대 왕.
혼인 정책으로 각 지방의 호족 세력을 아우르며 왕권을 안정시켰습니다.
또한 북진정책을 추진하여 발해 유민을 포용하고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고자 했습니다.

2대 혜종 (943~945)

태조의 장남으로 즉위했지만, 이복형제들과의 왕위 다툼으로 내분을 겪으며 짧은 재위(2년) 끝에 붕어했습니다.

3대 정종 (945~949)

혜종의 이복동생. 평양으로 천도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. 하지만 서경(평양)의 중요성을 강조한 왕으로 평가됩니다.

4대 광종 (949~975)

고려 왕조의 전환점을 만든 인물입니다.
노비안검법 제정, 과거제 실시를 통해 왕권을 강화했습니다.
그의 개혁은 신분제 개혁의 초석이자 중앙집권 체제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사건으로 꼽힙니다.

5대 경종 (975~981)

광종의 아들로, 전시과 제도를 마련해 토지 분배 기준을 확립했습니다. 고려 관료체제의 경제적 기반을 닦은 왕입니다.

6대 성종 (981~997)

태조의 손자이며, 유교 정치이념을 국가 통치에 본격적으로 도입했습니다.
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수용하며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완성했습니다.

 

📜 ② 안정과 문화 융성기

경종의 아들. 전시과를 개정하고 학문을 장려했지만, 안으로는 외척 세력의 간섭이 심했습니다.

8대 현종 (1009~1031)

거란의 침입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았지만, 강감찬의 귀주대첩(1019)으로 이를 극복했습니다.
또한 불교 신앙으로 대장경(6천여 권)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.

9~11대 덕종·정종·문종

이 시기 고려는 전성기를 맞습니다.
문종(1046~1083) 때에는 국가 제도와 문화가 완성되어 “고려의 황금기”라 불립니다.
건축, 예술, 불교, 학문 모두 절정을 이루었죠.

 

⚔️ ③ 무신정변과 귀족의 시대

15대 (순종~숙종)

왕위 계승이 잦아들며 왕권이 약화되었습니다.
특히 숙종(1095~1105)은 은병(銀甁)이라는 화폐를 발행하며 경제 개혁을 시도했지만, 실효는 크지 않았습니다.

16~17대 예종·인종

예종은 국학에 양현고(養賢庫)를 설치해 학문 진흥을 장려했습니다.
인종은 김부식에게 삼국사기 편찬을 명령하며 역사 정리 사업을 추진했지만, 내부적으로는 이자겸의 난,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등 왕권 도전이 잇따랐습니다.

18대 의종 (1146~1170)

귀족 중심의 향락 정치를 일삼다가 무신정변으로 폐위되었습니다.
이 사건은 고려 사회의 계급 질서를 뒤흔든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.

 

📚 팩트체크:

“1170년 무신정변은 정중부, 이의방 등이 주도하여 왕을 폐위시키고 무신정권을 수립한 사건이다.”
— 『고려사』 권19, 의종세가

19~21대 명종·신종·희종

무신 최충헌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최씨 무신정권 시대가 열립니다.
왕은 이름뿐이었고, 실권은 무신 세력에게 있었습니다.
이 시기에는 만적의 난, 김사미·효심의 난 등 사회 혼란이 극심했습니다.

22~23대 강종·고종

몽골의 침입으로 고려는 강화도로 천도해 30년 가까이 항전했습니다.
이 시기의 대표적 전쟁 영웅이 바로 김윤후와 처인성 전투의 승려 승장 김윤후입니다.

 

🏹 ④ 원 간섭기와 왕권의 몰락

몽골과의 전쟁을 끝내고 친몽정책을 추진했습니다.
그의 재위 중 삼별초가 반기를 들며 끝까지 항쟁했습니다.

25대 충렬왕 (1274~1308)

원나라의 공주와 혼인하며 ‘고려왕이자 원 황제의 사위’라는 독특한 지위를 가졌습니다.
고려는 명목상 자주국이었지만, 사실상 원의 간섭을 받는 반속국이 되었습니다.

26~28대 충선왕·충숙왕·충혜왕

이 시기 왕들은 대부분 원에서의 권력 투쟁과 내부 귀족 반발로 안정적인 통치를 하지 못했습니다.
특히 충혜왕은 방탕한 행실로 두 차례 폐위되는 굴욕을 겪었습니다.

 

🛕 ⑤ 개혁과 고려의 마지막 세대

고려 부흥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.
반원정책, 신돈을 통한 개혁정치, 전민변정도감 설치 등 개혁을 추진했지만, 권문세족의 반발로 실패했습니다.
결국 시해당하면서 개혁은 중단되었습니다.

 

🧾 팩트체크:

“공민왕은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, 토지제도의 개혁을 시도하였다.”
— 『고려사절요』 권26, 공민왕조

32~33대 우왕·창왕

공민왕 사후, 실권은 이미 이성계와 최영 등 무장 세력에게 넘어갔습니다.
이성계의 위화도 회군(1388)으로 왕은 폐위되고, 고려 왕조의 종말이 다가왔습니다.

34대 공양왕 (1389~1392)

고려의 마지막 왕.
결국 1392년,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고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.

구분 시기 주요 왕 핵심 특징
건국기 918~997 태조~성종 국가 기틀 확립, 유교 정치이념 수용
전성기 997~1083 목종~문종 문화·불교의 황금기
무신정권기 1083~1259 의종~고종 무신정변, 사회 혼란
원 간섭기 1259~1351 원종~충혜왕 외세 종속, 왕권 약화
개혁기 1351~1392 공민왕~공양왕 반원정책, 조선으로의 이행

 

💬 마무리 — “고려는 끝났지만, 그 정신은 이어졌다”

 

고려는 멸망했지만, 그 유산은 조선으로 이어졌습니다.
왕건의 호족 포용 정신, 광종의 개혁 의지, 성종의 유교 정치, 공민왕의 자주 회복 노력은 이후 한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.

고려의 474년은 단순한 한 왕조의 역사가 아니라, 중세 한국 사회의 뼈대가 된 시대였습니다.
오늘날 우리가 ‘고려청자’, ‘고려불화’, ‘팔만대장경’을 떠올릴 때 느끼는 그 품격 — 그것이 바로 고려의 정신입니다.